일본 경제의 가장 큰 불안 요인이 ‘사람의 부재’로 떠올랐습니다. 단순한 수요 자극만으로는 성장이 이어지지 않는 국면, 기업 현장에서는 인력 부족이 매출과 부가가치의 직접적인 손실로 번지고 있습니다. 숫자는 분명합니다. 연간 16조 엔 규모의 기회손실—이제 문제는 ‘얼마나 팔 수 있느냐’가 아니라 ‘누가 일하느냐’입니다.
인력난이 만든 16조 엔의 그림자
닛케이가 전한 일본종합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인력 부족으로 발생한 연간 기회손실은 16조 엔에 달합니다. 이는 명목 GDP의 2.6% 규모로, 불과 5년 사이 4배 급증했습니다. 특히 비제조업에서만 13조 엔의 손실이 발생했습니다. 숙박·요양·택배는 ‘사람의 시간’이 투입되어야 매출이 일어나는 업종입니다. 이들 산업에서 기계화와 자동화가 늦어지면서, 수요가 있어도 공급(서비스 제공)을 못 해 매출 자체가 사라지는 ‘공급 제약형 경기’가 나타난 것입니다.
현장의 사례는 상징적입니다. 도치기현 닛코시의 기누가와 파크호텔은 종업원 수가 팬데믹 시기보다도 40% 줄었고, 객실 가동률은 50%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사이타마의 코프델리생협연합회는 대체 인력을 구하지 못해 한여름 성수기에 5일간 택배를 중단했고, 이는 연 매출의 2%를 포기한 결정이었습니다. ‘수요가 있어도 못 파는’ 일이 일상화되자, 기업의 성장 전략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도산 증가와 ‘예비 위험군’의 확대
인력난은 재무제표로도 드러납니다. 2024회계연도(3월 결산) 기준, 구인난·퇴직 증가·인건비 급증 등을 이유로 한 도산이 전년 대비 60% 늘어난 309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습니다. 더 우려스러운 건 ‘예비군’입니다. 54만 개 기업 중 2.5%가 인력난으로 도산할 가능성이 큰 집단으로 분류됐고, 이 비율은 5년 사이 0.3%포인트 상승했습니다. 도쿄상공리서치는 “인력 부족 도산은 앞으로도 급증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이는 인력난이 일시적 비용 문제가 아니라 사업 지속성(going concern)을 위협하는 구조적 리스크임을 시사합니다.
수요 회복 국면에서조차 생산·서비스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면, 매출을 키우려는 마케팅과 가격 전략이 공허해집니다. 결과적으로 현금흐름이 악화되고, 인건비 인상과 채용 비용은 늘며, 잔업·초과근로에 의존한 무리한 운영이 품질 저하와 사고 리스크로 되돌아옵니다. ‘사람’이 병목인 체계에서 이자부담까지 더해지면 도산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노동시간 완화 vs. 생산성 투자, 해법의 분기
정부는 노동 공급을 즉시 늘릴 수단으로 노동시간 규제 완화를 검토 중입니다. 2019년 시행된 ‘일하는 방식 개혁법’은 연간 초과근로 상한을 720시간으로 제한합니다. 한시적 완화는 분명 일정한 공급 확대 효과가 있겠지만, 과로에 따른 생산성 하락과 품질 리스크, 장기적 이탈(퇴직) 증가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근무시간을 ‘늘려서’ 매출을 올리는 방식은, 고령화·저출산 구조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대안은 생산성 향상 투자, 특히 소프트웨어·디지털 전환(DX)입니다. 법인기업통계조사에 따르면 종업원 1인당 소프트웨어 자산은 음식·숙박 2만 엔, 의료·복지 5만 엔으로 집계됩니다. 전체 산업 평균(45만 엔)에 크게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즉, 사람이 부족한데도 ‘사람을 보조할 도구’ 투자가 비정상적으로 낮습니다. 예약·요금·객실관리(PMS), 배차·수요예측, 근태·스케줄링, RPA와 저코드 업무자동화 같은 기초 DX만 적용해도 동일 인원으로 처리 가능한 업무량은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수요자극의 한계와 ‘공급역량 중심’ 체질개선
그간 일본은 재정지출과 금융완화로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을 반복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수요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공급 제약이 핵심 병목입니다. 인력·시간·숙련의 절대량이 부족하면, 재정으로 수요를 부어도 가격 상승과 대기행렬만 길어질 뿐 실질 성장은 제한됩니다. 이제 정책의 초점은 ‘얼마나 쓰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만들고, 얼마나 제공할 수 있는가’로 이동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세 축이 필요합니다. 첫째, 인적투자—임금 인상과 직무 재설계, 리스킬링·업스킬링을 통한 숙련 곡선 단축. 둘째, 자동화—프런트(예약·결제·키오스크)부터 백오피스(회계·재고·배송·배차)까지 소프트웨어 기반 표준화. 셋째, 참여 확대—여성·고령층·외국인 노동의 제도적·문화적 장벽 완화. 세 축이 함께 돌아가야 ‘사람 1명당 부가가치’가 구조적으로 상승합니다.
핵심 수치 요약
| 지표 | 수치 | 의미 |
|---|---|---|
| 연간 기회손실 | 16조 엔 | 명목 GDP의 2.6%, 5년 새 4배 증가 |
| 비제조업 손실 | 13조 엔 | 숙박·요양·택배 등 노동집약 업종 집중 |
| 도산 건수(’24 회계연도) | 309건 | 전년 대비 +60%, 사상 최대 |
| 도산 예비 위험군 | 2.5% | 54만 개 기업 중 비중, 5년 +0.3%p |
| 소프트웨어 자산/인(음식·숙박) | 2만 엔 | 전체 평균(45만 엔)의 극히 일부 |
| 소프트웨어 자산/인(의료·복지) | 5만 엔 | 자동화·DX 투자 격차 심각 |
‘사람×소프트웨어’의 레버리지 없이는 성장도 없다
일본의 성장 방정식은 바뀌었습니다. 수요를 자극하는 정책만으로는 더 이상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인적 투자(임금·숙련·정착)와 소프트웨어 투자(DX·자동화)를 결합한 ‘공급역량 강화’가 필수입니다. 노동시간을 늘리는 단기 해법은 피로 누적과 품질 저하를 통해 다시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동일 인원으로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도록 업무를 표준화·자동화하는 기업이 향후 업종 재편의 승자가 될 것입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람이 모자라다’는 진단을 넘어서, 현장의 프로세스·데이터·소프트웨어를 통한 생산성 점프입니다. 정책은 이 전환을 가속화하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16조 엔의 손실을 줄이고, ‘팔 수 있는데 못 파는’ 시대를 끝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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