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제재가 부른 역풍, 중국 AI 칩 산업의 반격이 시작됐다
미국이 중국을 향해 첨단 반도체 제재를 강화한 지 불과 2년, 그 부작용이 점점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엔비디아와 AMD, 인텔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점유율 0%’로 추락하며 고전하는 반면, 중국 토종 AI 칩 기업들이 그 빈자리를 빠르게 채우고 있다. 이제 시장의 흐름은 “미국의 제재가 중국 반도체 생태계를 오히려 강화시켰다”는 분석으로 옮겨가고 있다.
미 제재의 역설: 엔비디아의 경고가 현실이 되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최근 뉴욕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미국의 수출 규제로 인해 중국 내 엔비디아 첨단 칩의 시장 점유율이 95%에서 0%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단 한 줄의 발언이었지만, 그 의미는 깊다. 미국 정부가 자국의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단행한 대중(對中) 반도체 제재가 오히려 중국 현지 기업들에게 ‘황금 같은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는 한때 중국 AI 칩 시장의 절대강자였다. A100, H100과 같은 GPU 제품군은 전 세계 데이터센터와 AI 학습 시스템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2022년 이후 잇따른 수출 금지 조치로 인해 중국향 제품 출하가 제한되면서, 엔비디아는 중국 고객을 대상으로 ‘다운그레이드 버전’인 H20·L20을 출시해야 했다. 문제는 이 제품들이 현지 경쟁사들의 기술 진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AI 칩 시장의 급부상: 캠브리콘과 무어스레드의 질주
‘중국판 엔비디아’로 불리는 캠브리콘(Cambricon)은 최근 3분기(7~9월) 실적에서 전년 대비 14배에 가까운 매출 성장을 기록했다. 17억2680만 위안(약 3440억 원)의 매출과 5억6700만 위안(약 1130억 원)의 순이익을 달성하며, 작년의 적자 구조를 완전히 뒤집었다. 캠브리콘은 2016년 중국과학원(CAS)의 지원으로 설립된 스타트업으로, 초창기에는 화웨이의 스마트폰용 AI 칩을 설계했으나 현재는 데이터센터용 고성능 AI 칩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 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소프트웨어 호환성’이다. 캠브리콘은 엔비디아의 쿠다(CUDA) 생태계에서 학습된 AI 모델을 자사 칩에서도 쉽게 실행할 수 있도록 ‘쓰위안(思元)’ 플랫폼을 개선했다. 실제로 바이트댄스(틱톡 모기업)의 엔지니어들은 “화웨이 어센드 칩보다 캠브리콘 제품이 사용하기 쉽다”고 평가했다. 이는 단순한 하드웨어 경쟁을 넘어, 생태계 적응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GPU 전문 팹리스인 무어스레드(Moore Threads)도 주목받고 있다. 엔비디아 중국 지사 출신이 2020년에 설립한 이 기업은 상하이 스타마켓 상장을 앞두고 있으며, 올해 상반기 매출 7억100만 위안(약 1400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매출의 95%가 AI 연산 관련 제품에서 발생했으며, 이는 단 3년 만에 누적 매출을 뛰어넘은 수치다. 무어스레드는 AI 서버용 GPU뿐 아니라 게임·메타버스 분야까지 확장 중이다.
| 기업명설립연도주요 제품2024~2025 실적 | |||
| 캠브리콘 | 2016년 | AI 데이터센터 칩(쓰위안 시리즈) | 매출 17억 위안(+14배) |
| 무어스레드 | 2020년 | GPU·AI 클러스터 | 매출 7억 위안(신기록) |
| 화웨이 | 1987년 | 어센드(Ascend) AI 칩 | 내수 중심 성장 |
미 반도체 퇴조, 중국의 ‘칩 자립’ 가속화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중국 내 입지는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 인텔과 AMD 역시 중국 수출 제한으로 인해 고성능 AI 칩 판매가 막히자, 성능을 낮춘 저가형 모델을 내놓고 있지만, 현지 시장에서는 캠브리콘이나 무어스레드에 밀리고 있다. 한때 데이터센터용 메모리 시장을 주도했던 마이크론도 2년 전 중국 정부의 ‘핵심 인프라 구매 금지’ 조치로 큰 타격을 입었고, 현재는 사실상 중국 서버 시장에서 철수한 상태다. 전체 매출에서 중국 비중은 16%에서 7%로 축소됐다.
이러한 변화는 중국 빅테크 기업들에게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텐센트 등은 자국산 칩을 실제 AI 서비스에 투입하면서, 내부적으로 기술 적합성 검증과 피드백 루프를 빠르게 구축 중이다. 이는 곧 R&D 강화와 칩 품질 개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SMIC의 생산 병목과 정부의 전략적 개입
중국 팹리스 산업의 가장 큰 제약은 생산 능력이다. 캠브리콘과 무어스레드가 설계한 칩을 실제로 양산하는 파운드리는 중국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SMIC(Semiconductor Manufacturing International Corp) 한 곳뿐이다. 문제는 SMIC가 아직 7나노 이하 첨단 공정의 생산량을 크게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장비 수출 규제로 인해 EUV 리소그래피 장비 확보가 어려운 탓이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이 병목을 완화하기 위해 직접 개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업계에서는 “SMIC가 화웨이뿐 아니라 캠브리콘을 위한 생산 물량을 별도로 배정하라는 정부 지시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는 단일 기업(화웨이)에 의존하지 않고, 다수의 경쟁 기업을 키워 ‘내부 경쟁 체계’를 조성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SMIC 생산능력 배분을 통해 캠브리콘을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이는 단기적으로는 비효율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반의 자립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술 자립의 마지막 관문: R&D와 생태계 경쟁력
중국 팹리스의 진짜 경쟁력은 기술적 자립과 생태계 확장에 달려 있다. 캠브리콘은 지난 4년간 56억 위안(약 1조640억 원)을 R&D에 투자했고, 그 결과 자사 칩에서도 엔비디아 쿠다 기반의 학습 모델을 거의 동일하게 실행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호환성은 소프트웨어 전환비용을 낮춰주며, 중국 내수 시장뿐 아니라 동남아 및 러시아 등 ‘비제재권역’ 수출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다.
골드만삭스는 캠브리콘의 중국 AI 칩 시장 점유율이 2024년 3%에서 2028년 11%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단순한 시장 확대가 아니라, 엔비디아·AMD의 퇴조로 생긴 공백을 중국 기업들이 메우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미국 제재의 역풍, 중국 기술 굴기의 또 다른 장
결국,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는 단기적으로 중국의 기술 접근을 막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기술 내재화’를 가속화시켰다. 캠브리콘과 무어스레드의 급성장은 그 상징적 사례다. 중국 정부는 이제 화웨이 하나에 의존하지 않고, 다수의 AI 칩 제조 스타트업을 통해 생태계를 분산시키는 전략을 구사 중이다. 이는 반도체 산업의 지정학적 구도를 바꾸는 서막일지도 모른다.
Q&A
Q1. 엔비디아의 중국 시장 철수가 글로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A. 단기적으로는 미국 반도체 주가에 부정적이지만, 동남아·인도 등 신흥국 시장에서의 재확장이 가능하다.
Q2. 중국 AI 칩의 품질은 글로벌 수준에 도달했는가?
A. 아직 5~7나노 공정 한계로 전력 효율과 속도는 엔비디아 대비 70~80% 수준이지만, 빠른 속도로 추격 중이다.
Q3. SMIC의 생산 한계가 장기적으로 완화될 수 있을까?
A. 단기적으로는 EUV 장비 제약이 존재하나, 중국 내 대체 공정 개발이 진전 중이다.
Q4. 향후 주목해야 할 중국 AI 반도체 기업은?
A. 캠브리콘, 무어스레드, 베이징 버리 실리콘, 화웨이 하이실리콘 등이 있다.
Q5. 투자자 관점에서의 포인트는?
A. 기술 호환성, 정부 지원 여부, 파운드리 협력 구조가 주요 변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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